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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교육

유치원에서 일하다 허리를 다쳤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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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서 일하다 허리를 다쳤던 일

 

 

 

독일, 브레멘에서 생활한지 벌써 4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평생교육원에서 독일어 공부를 했고 직업훈련으로 유아교육과에 입학에서 지금도 다니고 있다. 직업훈련 (아우스빌둥) 독일만의 오래된 교육 시스템으로 2-3일은 직업기관에서 이론을 배우고 나머지 2-3일은 해당되는 일을 직접 배운다. 예를 들어, 나는 2-3일은 유치원에서 일한.

 

 

 

살다 보면 누구나 한번씩 아프겠지만, 그리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신체적인 건강과 정신적 건강 모두를 챙겨야 한다는 알지만,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같다. 외국에서 아프면 서럽다고 하는데, 두통으로 진통제 먹는 정도이거나 진통제 효과로 일상생활을 있을 정도라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이 너무 자주 와서 정신적인 건강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다르겠지만.

 

 

 

나는 잔병치레를 거의 안 했고, 감기도 잘 안 걸리는 데다 운동도 잘하면서 좋아하니,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까지도 나는 나 자신이 건강하다고 항상 믿어왔다. 성격이 예민한 편이라 위염이나 위경련같은 스트레스성 통증이 한번씩 오기는 했지만, 그건 현대병이라 크게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열아홉에 허리 디스크판정을 받아 끊임없이 통증에 시달렸지만, 지나고 나면 어느새 건강을 장담하곤 했다. 그게 문제인 것은 알겠으나 고쳐지지가 않는다.

 

 

 

허리디스크는 유전적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그 영향을 받는 비율이 40 %라고 한. 나는 부모님 디스크 뿐 아니라 골다공증으로 고생하시고 계시니 허리가 약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도, 다년간 머물렀던 호주에서도 같았다. 진통제를 먹고도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많이 아프면 물리치료를 받았고, 그렇게 나아지면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그것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아프면 힘들고, 힘듦이 축척되면 그대로 서러워지니까. 종교가 없음에도 임신 전에 기도하고 기도 했다. 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으니 임신해서 허리만 안아프게 해달라고. 그런데 노산임에도 임신해서 허리가 안아팠고, 출산 후에도 좋았다. 그랬기에 아이가 15 Kg  때까지 많이, 아주 많이 안아줬다. 한 번씩 허리가 아프면 그랬던 것처럼 진통제를 복용했고, 진통제로 살만하면 다시 아이를 안을 있어 감사하며 그것이 행복이라 생각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평범한 봄 날, 그날은 유치원에서 일하는 날이었다. 독일 유치원은 보통 만 0-2세가 0-2세가 가는 작은 아이들 , 만 3-6세 아이들이 가는 아이들 반으로 나누어져 있다. 보통 비슷한 나이 또래 아이들이 같이. 장단점이 있겠지만, 나 장점을 크게 보고있고, 그것은 일하면서 더더욱 그렇게 느꼈다. 나는 지원할 미리 아이들 반에서 일하겠다고 말했다. 작은 아이들 반에서는 기저귀도 갈고 아이들 안고 달래는 일도 많을테고, 아무래도 허리를 써야하는 일이 많겠지.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매일 밖에서 노는 시간이 있는데, 시간에 일어난 일이다. 모든 아이들이 나갔기 때문에 반은 비어있었다. 브레멘은 평소에 비가 많이 내리는데, 억수 같은 비가 내리지 않는 이상 비오는 날에도 아이들은 비옷을 입고 나가서. 우리 유치원에는 아주 모래장이 있는데, 비가 오는 날에는 거기서 노는 아이들이 적다. 그래서 생각해 것이, ‚아, 마른 모래를 실내에 갖다 놓으면 밖에 나가지 않는 날에도, 비가 오는 날에도 갖고 있겠구나‘.

 

 

 

마침 유치원 창고에 컨테이너들이 많이. 그중에 모래 놀이로 아주 적절한 하나를 골랐다. 아이들이 밖에서 노는 것처럼 제대로 모래놀이를 있으면 좋겠고, 그러려면 되도록 용기는 크면서 아이들이 앉아서도 있게 탁자 위에 올릴 있는, 면적은 크지만 높지 않은 아주 안성맞춤의 용기였다. 들어봤다. 메탈로 용기, 너무 무겁다. 너무 무거워서 번쩍 못들고, 위에 용기를 올린 , 손과 힘까지 이용해서 한발짝 한발짝씩 옮겼다. 드디어 우리 반까지 왔는데, 이제 무거운 용기를 어떻게 탁자 위에 올릴까? 이것도 위에 먼저 올리고 반쯤만 끌어 밀어 올린 지렛대 원리로 마지막 반을 올릴 생각이었다.

 

 

 

먼저 반을 손과 힘으로 올리는데, 우리 6 아이 명이 목이 마르다며 들어온다. 친구가 보더니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성큼성큼 다가온다. 자기는 힘이 아주 세다며,  나한테 본인이 얼마나 힘이 센지 보여주고 싶단다. 안된다고, 이건 너무 무거워서 니가 다칠수도 있다고 강하게 얘기했으나 아이는 벌써 용기 끝을 잡고 힘을 . 무겁다 당연히. 나한테도 이렇게 무거운데 6 아이 힘이 아무리 세봤자 그게 들리겠는가. 아이는 무게에 못이겨 바로 용기를 손에서 놓는다. 용기를 놓으면 용기 모서리가 친구 등에 떨어지겠지. 찰나 먼저 있는 힘을 , 위기 상황에서만 나온다는 200퍼센트 에너지를 끌어올려 용기를 얼른 테이블 위에 올렸다.

 

 

 

순간 허리가 아찔하게 아프다.

그러나 허리통증에 익숙했던 미련하게 진통제만 먹는다. 그랬으니까. 이번에도 일주일 먹어보고 못견디게 아프거나 나빠지면 병원에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허리를 다친 날이 월요일 이었는데, 매일 진통제를 먹어도 나이지기는 커녕 진통제가 듣질 않는다. 아픈 것도 그렇지만,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일어나는 것이 그렇게 힘들 수가 없다. 다친 3일째부터는 소파에 앉아서 잠을 정도였다. 그렇게 5일을 버티다 토요일에 응급실을 찾았다. 독일은, 브레멘은 대부분의 병원이 주말에 열지를 않아 응급실에 수 밖에 없었다. 응급실 의사, 아는 이야기라는 ,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 강한 진통제 처방 해 주겠단다. 그러고도 아프면 주말 지나고 병원 가보란다. 

 

 

 

그렇게 처방받은 진통제를 먹어도 고통은 더해만. 매일 앉을 , 일어날 때, 걸을 아팠지만, 가장 힘든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날 때 였다. 남편이 도와주었음에도 일어나는 30분이 넘게 걸렸으니까. 말이 30 넘지, 30분동안 일어남을 시도할 때마다 식은 땀을 흘려야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인 일요일. 나 일어나지를 못한다. 시도에서 너무나도 고통을 느껴 일어날 수가 없었다. 마치 척추와 연결되어 있는 모든 신경이 눌려 조금만 움직여도, 조금만 신경을 건드려도 견딜 없는 고통이 오는 같았다. 이건 마치 출산과 맞먹는 고통인 같다. 침대에서 일어나기는 커녕 움직일 수도 없어서, 조금이라도 움직일 때마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절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여유가 있어야 있겠지. 나 마냥 아파서 울기만. 그렇게 시간이 지났을까. 나 남편이 부른 구급차에, 구급 대원들이 가져온 들것에 들려 집을 나간다. 과정에서도 먼저 먹는다. 너무 아프니까 최대한 천천히 해달라고 미리 얘기했는데, 그럼에도 몸이 들려 들것에 옮겨가는 과정에서 오는 아픔은 상태에서 피할 없었다.

 

 

 

그렇게 난생 처음으로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실려간다.

 

 

 

코로나 규정으로 남편이 함께 구급차에 타고가지 못해, 나라가 아닌 외국에서, 너무나 육체적 고통속에 혼자라는 느낌은 줄로 표현하기 힘들 같다. 구급차를 타자마자 진통제 하나를 먹고,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액체로 진통제를 마시고, 시간쯤 기다렸다가 의사가 진통제를 하나. 세상에, 너무 같다. 진작 팍팍 주지 진통제.. 일어나지도, 움직이지도 못했는데, 절뚝거리며 짚어가며 살살 걷는 보며, 의사 선생님은 CT MRI 찍을 일은 아니라 잘라 말한다. 그러며 정형외과 담당 선생님과 진료예약은 했는지만 확인하고는 진통제를 주며 집에 보낸다. 그래도 응급실 갔다오니 같으니까, 그리고 정형외과 담당 선생님과도 진료예약을 미리 잡아 놓았으니 그나마 마음이 가볍다.

 

 

 

진통제와 위보호제를 목숨처럼 챙겨먹고 정형외과에. 운이 좋게도, 나는 지금까지 정형외과만 다닌다. 다른 정형외과로 옮길 필요가 없었다. 내 다니는 정형외과는 한번 일반 진료 예약 잡으려면 3개월은 기다려야. 이번 일은 상황이 좋아보여 주만에 예약을 잡아 주었지만 보통은 많이 기다려야. 그럼에도 정형외과를 바꾸지 않는 이유는, 의사 선생님이 아주 꼼꼼하시게 진료하시기 때문이다.

 

 

 

그날도 물어보시고, , 다리, , 허리 온몸 반응을 체크하셨다. 한쪽 귀를 누르고 다리를 들어보시고, 구부리고, 돌리고 등을 반복 하시더니 마지막으로 귀에 작은 침을 개를 놓으셨다. 그랬더니 정말 거짓말같이 고통이 아주 적어졌다. 나 놀라고 남편도 놀라는데, 의사 선생님과 옆에 보조하는 언니는 일상인듯 아무렇지도 않다.

 

 

 

그렇게 항생제를 받아 먹고 살만하니 다시 건강을 자신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이번 일로 건강에 대한 기본 교훈 다시 한 번 되새겼다. 아프면 그러겠거니 하고 진통제 먹으면서 버티지 말고 바로 병원 가야겠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을, 몸을 챙겨줘야겠다. 안하면 누가 하나, 나부터 안챙기면서 누가 대신 챙겨주기를 바라는 것은 정말 아닌 같으니, 일단 스스로 돌봐야겠다.

 

 

 

작년 2021년에는  365 중에 300 정도를 요통으로 힘들어했는데, 2022년에는 운동도 더하고 몸을 열심히 챙겨주고 아껴주면서 몸과 마음이 서로 행복한 해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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