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학교 수업방식-토론식 수업
독일에서 공부를 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토론식 수업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그런데 왜 나는 토론식 수업이 힘들까? 왜 한국인인 나는 토론식 수업이 벅찰까? 여기에 대해서 한 번 생각을 해봤다.
독일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내 생각을 말하는 법과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는 법/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훈련받는다. 선생님은 학생들의 대답을 듣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 사람의 생각에는 정답이 없으므로 이런 생각도 있을 수 있고 저런 생각도 있을 수 있다는 다양성의 개념으로 학생들을 이끌어주는 것 같다. 그러니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이 중요할 뿐, 내 생각이 틀릴 것이 두려워 손을 못 드는 일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독일의 학생들은 생각하는 법, 사고력을 확장하는 법, 자신의 논리를 탄탄하게 전개하는 법까지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그에 반해 우리는, 나는 학교에서 대부분의 교과목을 정해진 답을 이해하고 암기하는 식으로 배웠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보는 시험은 객관식 문제가 주를 이룬다 (독일의 시험은 사고력을 판단해야 하므로 항상 서술형, 논술형이다). 시험을 보면 4개 중에, 혹은 5개 중에 하나만 정답이고 나머지 3/4개는 다 틀렸었다.
5차 교육과정으로 교육을 받은 나는 무엇이든 정답이 있다고 배웠다. 그 당시 선생님의 권위는 학생이 감히 거스를 수 있는 것이 못되었고, 만약 그런 학생이 있다면 어떤 벌을 받아도 마땅하게 여겨지는, 어느 부모도 맞서지 않는 환경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집으로 전화를 하면, 일 년에 한 번 하는 형식적인 전화임에도 부모님은 왠지 모르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그땐 또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한 선생님이 하는 말은 다 옳으며 맞는 말이었고 마치 법인 것 같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선생님이 칠판을 한가득 채우며 설명하면, 들으면서 필기를 아주 많이 했던 기억이 있다. 주입식이니까 한쪽이 정보를 주면 나머지 한쪽은 정보를 받아 처리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이 과정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을 때 정답으로 답하면 어깨를 으쓱하고, 오답을 얘기하면 다른 반 친구들이 비웃어도 되는 교육환경이었기에 내가 생각하는 답이 확실하지 않으면 손을 들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중학교에서 이기주의는 나쁜 것이고 이타주의는 좋은 것이라고 배웠다. 단 한 번도 이기주의가 좋은 면도 있을까에 대해, 혹은 이타주의가 나쁜 면이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런데, 독일 수업시간에 이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한다고 하면, 나는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내 머릿속에 있는 틀에 박혀 있는 생각으로 토론을 하면 금방 한계가 오니 생각을 전환해야 한다. 주제에 대해 찬찬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고, 논리를 펴 나갈 구조도 생각해야 한다. 이게 바로 주입식 교육과 토론식 수업의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단답형인 정답을 찾으면 끝인 우리 교육과 why(왜)? 와 what if(만약 -라면)의 질문을 던져 자꾸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독일 교육의 차이. 게다가 아직도 나는 꼭 정답만을 말해야만 할 것 같다. 여기선 정답이 없는데, 개개인의 생각이 정답이고 그들의 경험담이 또 다른 수업 주제가 되기도 하는데, 이 틀을 깨는 것이 참 어렵다.
독일 학교에서는 언제부터 토론식 수업을 할까?
독일은 유치원을 다닐 때부터 자기 생각을 말하는 법을 배운다. 만 3세부터 자신이 속한 그룹에서 손을 들고 발표하는 법을 보고 배우게 된다. 다른 친구들이 손을 드니까 본인도 따라 손을 드는 경우도 많고, 막상 발언권이 주어지면 아무 말도 안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런 경험을 유치원 생활 4년 동안 쌓게 하고 이런 환경이 자연스럽고 일상이 되면 초등학교에 가서도 토론의 기초를 다지는데 대부분 어려움이 없다.
첫 번째 질문, 나는 왜 토론식 수업이 힘들까?로 다시 돌아가면, 언어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내가 토론 수업이 힘들게 느껴지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지만, 언어가 된다 해도 토론 수업을 마음 편히 할 것 같지는 않다.
나는 토론문화가 익숙한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다. 내게 토론은 TV에서 보던 시사토론, 100분 토론 같은 정치토론이지 일상에서는 토론이라는 게 없었다. 학교에서는 물론이고 직장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누군가의 말이 맞으면 다른 누군가의 말은 틀리고, 선생님이나 회사의 대표는 그 주제를 마무리짓는, 토론보다는 토의를 했던 것 같다.
우리 사회는 독일에 비해 '다름'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한국 사람인, 성인인 내가 토론 수업이 힘든 이유이다. 건강한 토론은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본인의 생각을 이유, 예시, 직/간접 경험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거기에 자신의 감정이 이입되면 객관적인 논리를 펴기가 어려워진다. 그런데 내 생각이 '맞으면', 그리고 상대방의 생각이 '틀림'에도 계속해서 거기에 대한 주장을 펴면, 나는 벌써 마음이 답답하다. '내 생각은 이런데 쟤는 저렇게 다르게도 생각하네'가 안된다. 결국 이것도 연습이고 훈련인데, 그 중요한 생각의 근육이 내게 빠져있다.
이 토론문화는 누가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쇼핑을 가든, 친구를 만나든, 직장에서 일을 하든, 내 생각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으면 내 멘털이 튼튼해진다. 혹시 틀리지 않을까,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한 걱정 없이 언제 어디서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니 자존감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독일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에 비해 험담을 훨씬 적게 하는데,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토론은 하면 할수록 늘고 익숙해지는 것 같다.
처음에는 나도 발표를 할 자신이 없었다. 질문을 정확히 이해했는지조차 모르니 발표는 둘째치고 핵심 단어를 번역해서 수업의 흐름을 파악하기에 바빴다. 그런데 그것도 매일 반복하다보니, 그리고 수업에 참여하고 싶다는 갈증이 있으니 언젠가부터 토론에 참여하게 되었고, 조금씩 참여를 하다 보니 말하는 문장수는 늘었지만 어려운 점도 많이 있었다. 감정을 빼는 것이 쉽지 않았고, 어휘에서 부족함을 많이 느꼈으며, 내가 하는 말을 상대가 제대로 이해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실제로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듣는 사람이 내 말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참 많지만 거기에 신경을 덜 쓰려고 노력한다. 거기에 신경 쓰기 시작하면 더 주춤거리게 되고 잘하려고 하게 되는데, 그러면 오히려 발표도 덜하게 되고 확신 없이 말하기에 설득력이 떨어짐은 물론 말하는 기술이 늘지도 않는다.
처음부터 유창하게 하려고 하지 말고, 내 생각이 무엇(what)인지 말한 후 어떻게(how) 혹은 어떤 방법(which way)으로 그 생각에 설득력을 더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에 기초한 객관적인 정보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 그리고 이유 및 근거를 제시할 때에 정확한 출처까지 언급하면서 감정을 빼는 연습을 하면 조금씩 느는 것 같다.
수업시간에 자주 듣는 말이 있다.
- 세상에 멍청한 질문이라는 건 없다.
- 잘못됨이라는 건 없다. 피드백만 있을 뿐.. (무언가가 잘 되지 않았다면 그건 단순히 다른 방법으로 해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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