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댄스 교양수업 / 공연
2월의 어느 날 담당 강사가 학생들에게 교양선택 과목 한 가지를 고르라고 말한다.
첫 번째 - 스트레스 해소와 몸의 긴장을 늦추는 법,
두 번째 - 댄스 (학기가 끝날 때 관중 200석이 있는 무대 위에서 공연)
세 번째 - 청소년기의 발달 특성과 이해
관심은 이 세 과목에 다 있었다. 나중에 내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될 청소년기의 발달 특성과 이해, 내게 가장 필요한, 당장 시작하고 싶은 스트레스 해소, 그리고 댄스. 잠깐 고민하다 댄스로 골랐다. 취미로 추는 춤을 좋아할뿐더러, 다른 옵션들은 앉아서 먼저 책을 읽고 이론을 배울 것 같았다. 설마 댄스는 다른 과목들보다는 적게 공부하고 과제도 적겠지 싶은 마음에 골랐는데, 다행히도 적중했다. :)
첫 두 달은 코로나 규정에 따라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업했는데, 댄스의 종류, 역사, 독일 등에 대해 간략하게 배우고 간단히 몸을 푸는 정도로 수업이 끝났다. 여기서 아우스빌둥 수업이라 하면, 한 두 시간 받는 수업이 아니라, 한 과목에 4시간-4.5시간을 배운다. 그럼에도, 과제에 대한 압력이 없어서 잘 결정했다고 생각했다.
두 달이 지나고 코로나 규정도 느슨해지니 본격적으로 댄스교실에서 수업을 받았다. 약 10분 동안 공연을 하는 것인데, '나를 움직이는 것'이란 주제로 우리가 직접 이야기와 춤, 제목, 음악까지 다 결정하여 우리만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 한 한기 전체의 과제였다. 매 수업시간마다 작은 그룹을 만들어 토론도 하고 춤도 연습하고 했지만 좀처럼 가닥이 잡히질 않았다. 공연 한 달 전, 이제야 담당 강사가 빠르게 움직인다. 빠르게 결정하고, 연습시키고, 말조차 엄청 빨라졌다. 무언가를 정확하게 말해주는 대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다가 누군가가 질문하면 대답하는 형태로 수업이 흘러갔고, 막판 한 달 동안 언어가 딸리는 나는 '아, 그때 스트레스 해소 수업을 선택했어야 했는데..' 했다.:)
물론 강사에게 여러번 언급했었다.
"진행이 너무 빠르고 구조가 안 잡힌 채로 학생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태로만 연습하고 결정되니 원어민이 아닌 저는 지금 수업 따라가기가 많이 힘들어요."
그랬더니 강사가 그런다.
"하루에도 동작이 10번은 더 바뀌니, 너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사실 힘든 것 같다. 그리고 네가 그런 말 하는 건 충분히 이해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일단 내가 생각하는 바를, 내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으므로 자신에게 만족했다. 그럼에도 바뀌는 건 없었지만 그건 내 영역이 아니므로 잊어버려야 한다.
공연이 있었던 바로 전 주는 아주 중요한, 가장 중요한 학교 최종시험이 있는 날이었음에도 우리는 시험 준비 대신 공연 연습을 해야 했다 ㅡㅡ.
공연에 대한 독일과 한국의 문화차이
그렇게 시험도 끝나고 공연일이 다가왔다. 내가 한국인으로서 놀란 것은, 이건 공연을 할 만한 실력이 전혀 아니다.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춤을 추는 순서를 잘 모른다. 한국에서의 공연은 어떤 공연이던, 심지어는 아이들의 공연조차 착착 짜 맞춰진 것처럼 하지 않는가. 무대 위에서 실수를 할지언정 연습이 덜 된 상태로 무대에 올라가지는 않지 않는가. 더 놀라운 것은 누구도 이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불만족스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것도 문화차이니 '받아들이자'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정신적으로 참 힘들었다, 이렇게 무대 위에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
공연 당일.
우리 말고도 다섯 팀이 있었다. 다섯팀이 같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라는 주제로 댄스 작품을 만들어 약 10분동안, 오전에 1회, 오후에 1회 공연을 하기로 되어있었다. 오전은 다섯팀이 소속된 학교의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방문했고 오후는 가족들을 위한 공연이었다. 두 번 다 200석이 꽉 찼고, 우리는 무대 위에서 연습한 대로, 여기저기서 실수를 반복하며 공연을 마쳤다. 그런데 매 공연이 끝날 때마다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누가 어떤 실수를 했던지는 정말이지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가 열심히 연습했고, 그 결과를 최선을 다해 보여줬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제야 나는 생각해본다.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우리가 세계대회에 나가서 메달을 따는 것도 아니고 브레멘의 한 작은 학교에서 듣는 한 교양 수업일뿐인데, 그리 목을 매며 완벽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강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늘 강조했던 것이, '즐기자'였다. 연습할 때에는 연습하는 대로 즐기고, 공연은 무대 위에서 즐기면 되는 거라고, 그뿐이라고.
외국 생활이라는 게 이렇게 여기저기서 생각지도 못한 문화차를 느끼며, 배우며, 경험하며 사는 것 인가보다.
사진사가 찍은 많은 사진과 선물로 받은 공연비디오를 보는데, 아~ 못 보겠다.
내 정서로는 보기 힘든 내 공연. 그렇지만 댄스를 교양수업으로 선택한 건 백만 번 잘했다 생각한다. 이 기회가 없었다면 나는 공연에 대한 문화차를 배우지 못했을 것이며, 남편과 아이는 아내이자 엄마인 내가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볼 기회가 없었을 테니까.
2022.6.17. 브레멘 Schlachthof. 오전 11시/오후 6시 공연.
내 삶에 한 가지 색을 더 입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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