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내 인종차별
호주에서 살다 독일인 남편을 만나 잠시 한국에 몇 년 살다가 다시 호주를 거쳐 독일에 정착한지 5년. 첫 6개월은 몸이 안 좋아 집에만 있었고, 그 후 1년은 독일어 배우는데 매진했으며, B2까지 따고나서 코로나로 독일어 배움을 잠시 쉬다가 우연히 기회가 생겨 유아교육 아우스빌둥까지 쭉 달려온,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지난 5년이었다.
인종차별에 대한 경험을 지난 포스팅에서 나누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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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인종차별
독일 인종차별 인종차별? 나와는 별개의 문제로 생각해왔다. 학교 교과서에서만 배웠던 인종차별이었고, 많이들 겪는다는 호주에서의 아시아계 인종차별도 나는 겪은 적이 없었다. 인종차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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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인종차별을 꽤나 받아왔고, 거기에 대해 나름대로 잘 대처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직장에서, 내가 선택한 유치원에서 인종차별을 당할줄이야.
이 사건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배경을 잠깐 설명하면, 나는 유아교육 아우스빌둥 2년 동안 집 근처 유치원에서 일했다. 2년동안 학교에서 요구하는 학점을 채우고 시험을 통과하면 학교는 졸업과 함께 '나라에서 인정된 유치원 교사'의 자격증이 나온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라 1년동안 학교 이론수업 없이 유치원에서 일한 후, 콜로퀴움, 즉 시에서 주관하는 학술토론에 통과하여야만 '나라에서 승인된 유치원 교사'의 자격증이 나온다.
원래 계획은 2년 동안 이 유치원에서 일하고나서 아우스빌둥이 끝나고 나면, 3년째 되는 해에는 다른 유치원에서 1년을 일 할 생각이었다. 집 근처에 있는 유치원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그 유치원들이 벌써 사람을 구했거나, 경험이 없어서 3년차인 나를 채용할 수 없거나, 기다려 보라고 하거나. 그러던 차에 지원한 유치원 인사과에서 내가 일하던 유치원으로 전화했다.
일하는 유치원이 시립이고 지점도 많은데, 유치원 교사는 없어서 난리니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붙잡고 싶었을 것이다.
원장이 하루는 나를 부르더니, '인사과에서 전화왔는데, 니가 다른 지점에 지원했다더라. 그 지점은 생긴지 얼마 안되어 너를 채용할 수가 없는데, 나를 1년 더 채용할 생각없느냐, 해서 내가 너만 좋다면 당장 채용한다고 했다. 너는 우리에게 롤모델이고, 우리 유치원은 너같은 교사가 많이 필요하다.'
그렇게 3년째 이 유치원에서 일하게 되었다. 2년동안 일하던 반에서 다른 반으로 옮겨서 일했는데, 거기서 새로온 개인보조교사를 만났다. (반마다 2명씩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있는데, 그 둘을 각각 보조교사가 따로있다) 나이는 쉰살이 넘은 것 같고, 다른 유치원에서 일하다 왔다고 한다.
말을 거침없이 툭툭 내뱉는 것이 나랑 잘 어울릴 것 같지는 않지만, 늘 그렇듯, 나는 내 일을 한다. 반을 옮겨서 일한지, 그러니까 그 보조교사와 일한지 2주차 되는 날 점심 때, 우리는 같은 식탁에 앉았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아이들과 앉다보니 그렇게 된 건데, 내가 내 도시락을 여니 그녀가 얘기한다.
'니 점심 좀 이상해.'
내가 말했다. '내겐 내 음식이 너한테 어떻게 보이느냐보다 내 건강이 더 중요해.'
그 음식은 요거트에 블루베리 가루를 섞어 보라색으로 보였고, 거기에 블루베리와 사과, 바나나가 올려져 있었다. 쉽게 말해서 과일 요거트였고, 보라색 요거트 색이 거부감이 들었나본데, 허물 없는 사이도 아니고, 남의 음식갖고 이렇다 저렇게 말하는 건 아니지.
그렇게 넘어가고 다음날 우리는 또 그 자리에 앉았다. 그 전날과 같은 과일 요거트를 가져왔는데, 내가 도시락을 열자, 그녀가 말한다.
'미안한데, 니 점심 역겨워.'
분명 전 날 얘기했는데, 이거 뭐지? 하면서 얘기했다. '혹시 푸드 피라미드 아니? (모르는 걸 알면서 물었다) 거기에 우리 몸에 필요한 5대 영양소가 피라미드 모양으로 나와있는데, 내 음식에는 거기 필요한 5대 영양소가 다 있어. 그리고 니가 내 음식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 안했음 좋겠어.'
하고 말을 끝냈는데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자꾸 머리에 맴돈다. '니 음식 역겨워'. 이거 뭘까 이틀을 생각하다가, 이틀 후 그 보조교사를 조용히 불러 앉아서 얘기했다.
'니가 엊그제 나한테 내 음식 역겹다고 한 거, 예의가 아니야. 그리고 우리가 적어도 1년은 같은 반에서 일하는데, 앞으로 이렇게 나를 대하지 않았음 좋겠어.' 하고 했더니, 자긴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단다. 사과를 했으면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안되겠다.
여기서 내가 제일 먼저 해야 한 일은, 기록하는 것이다. 이 보조교사가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고 하니, 나중에 삼자대면을 해도 나는 했다고 하고, 상대는 안했다고 하면 누구 말이 사실인지 증명할 객관적이고 실질적인 무언가가 필요한데, 이를 기록으로 남기면 더 신빙성이 간다.
같이 앉아 점심 먹은 날부터 날짜별로 기록했다.
그 날, 원장실에 가서 이 일에 대해 얘기했다. 원장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며, 이 일에 대해서는 자기가 어떻게 대처할 지 생각해볼테니 너는 너답게 있기만 하면 된단다, 자기가 내 뒤에 있겠다며.
(원장실에 가서 얘기한 것도 기록!)
2주가 지나고 반 담임이 왔다. 원래 같이 일하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3주를 빠졌고, 이 담임이 내 직속이며 중간 평가, 최종평가 등을 적는 사람이다. 담임이 온지 이틀 후, 나한테 얘기 좀 하잔다.
'무슨 일 있었어?'
하며 다짜고짜 묻는데, 이건 무슨 소리?
'보조교사가 어제 나한테 왔었어. 니가 여기서 애들이랑 일을 하면 안될 것 같다고 하더라. 니가 애들 말을 이해못하고, 애들도 니가 하는 말을 이해 못한다고.'
보조교사가 이렇게 나올지 생각도 못했다.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그랬더니, 반 담임이 얘기하기를,
'그렇지 않아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니 언어가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일할 때 문제가 되는 건 전혀 없거든. 그리고 보조교사가 말하기를, 자기 자식들이 이 반에 있다면 다른 반에 보낼꺼라던데, 그 말에 무슨 일이 있었구나 생각했어.'
(직속과 대화한 내용도 기록!)
여기까지 듣고나니, 서러움이 복받쳐왔다. 내 말을 끝까지 들은 내 직속은 원장실에 가서 이 일을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내가 직접 얘기했음에도, 그리고 직속이 한 번 더 얘기 했음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가만히 있지 않을 나는, 보조교사의 원장(보조교사는 유치원 소속이 아닌 다른 회사 소속이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있었던 일을 전부 이메일에 적었으며 지금까지의 기록을 사진으로 찍어서 첨부했다.
이메일 내용은,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롤모델이 되어야하는데, 아이들은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에게서 뭘 배울지 모르겠다, 예를 들어, 나는 평소에 아이들에게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안먹어도 되고, 좋아하지 않아도 되는데, 다른 사람이 먹는 음식에 역겹다는 등의 말은 하지 않는다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이 보조교사가 아이들 앞에서 그렇게 얘기하면 아이들은 혼동스러을 것이다. 당신이 관리하는 많은 보조교사들이 이렇지 않길 바라며, 나처럼 그들에게서 부당한 대우로 상처받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메일을 적는 것이다.
며칠이 지나니 그에게서 이메일이 왔고, 간단하게 말하면, 일단 내 말이 다 맞단다. 그 보조교사와 그녀의 원장, 나, 내 원장이렇게 넷이 앉아서 얘기하는 건 어떻겠냐고 해서 그러자고 답을 했다.
그에게 이메일을 쓴 다음 날, 우리 원장이 나를 원장실로 불렀다. 원장과 부원장이 나를 앉혀놓고 하는 첫마디가 잘못된 길을 선택했단다. 보조교사 담당 원장이 유치원으로 전화해서 내가 그에게 이메일을 썼단 걸 알았는데, 우리 원장 말은, 우리 유치원에서 일어난 일은 유치원 내에서 해결하려고 해야 하고, 이메일을 쓸 생각이 있었으면 먼저 원장과 상의를 했어야지, 나한테 듣는 것이 아닌 보조교사 원장한테 듣는 건 아니란다.
부당한 대우와 차별 / 인종차별을 당한 건 나인데 두 원장이 불러서 나무란다. 흘러나오려는 눈물을 온 힘을 다해 꾹 참고, 얘기했다.
'두 분 하시는 말씀은 알겠어요. 그리고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할 것이며, 먼저 상의하도록 약속드릴께요. 하지만, 일이 있고 난 후, 먼저 그 보조교사와 직접 대면했고, 그 다음으로 원장실에서 얘기했으며, 내 직속과도 얘기했고, 직속이 원장에게 다시 한 번 얘기할 때까지 기다렸으며, 그 후 어떤 조치가 내려질지 기다렸으나 아무일도 없었어요. 그러니 제가 이 일에 대해서 밟아온 스텝들은 옳아요.'
까지 얘기하니 원장은 받아들였고, 부원장은 열받아 했다.
그 주에 보조교사 원장이 우리 유치원을 방문했으나, 원장과 둘만 얘기하고 가버렸고, 그 후 원장은 보조교사를 불러 얘기했는데, 보조교사는 이번에도, 나한테 그렇게 말한 적이 없고, 내 직속과도 그런 대화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단다.
그 보조교사는 이 일이 있기 전에도 본인이 담당하는 아이가 힘들다고 일을 관두겠다고 했던 차였고, 우리 원장도, 본인이 그만두지 않았더라도 이 일로 그만뒀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녀는 우리 유치원을 관두고 이 일은 일단락 되었다.
이 일을 인종차별이라 말한 건, 이 사람이 내가 어디에서 온 사람인지 물었고, 가방끈이 짧은 이 사람은 한국이 동남아의 한 가난한 나라로 생각했다. 최소한의 학력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어린이 보조교사이므로, 그녀는 이민자들을 대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듯 했고, 그녀가 살아가는 방식이 당연하듯,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가는양 생각했다.
내 언어가 짧은 건 내가 멍청해서가 아닌데, 그녀는 나를 아시아의 한 가난한 나라에서 부유한 유럽으로 이민온 어린 여자로 보고, 독일어 잘하는 그녀가, 그리고 유치원 경험 있는 그녀가 나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녀가 상상했던대로 나는 만사 오케이맨 이었어야 했는데, 자꾸 따지고 내 주장을 펴니 적지않게 당황했던 것 같다.
내 직속이 오기 전까지, 내 동료와 보조교사는 대화를 많이 했었다. 유치원 카페에서 커피를 가져올 때도, 우리 반에서는 보조교사, 내 동료, 나 이렇게 어른 셋이 일하는데, 나를 제외한 둘은 서로에게 커피를 가져다 주었다. 처음에는 '커피 하나에 뭘, 내가 가져다 마시지 뭐', 하는 마음이었으나, 갈수록 이거 따돌림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그 동료에게 하루는 직접 물어봤더니, 매일 아침 반에서 마시는 커피임에도, 내가 커피를 마시는지 몰랐다는 황당한 소리를 하더라. 그럼에도 그녀의 행동에 변함이 없어 보다 못한 직속이 물어보니, 나는 커피를 항상 갖고 있어서, 안물어봤다는 더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
암튼 그 후에는 자기가 커피 가지러 가면 나한테도 물어본다.
이번에도 결론은 그렇다. 우리는 입을 열어야 한다.
언어가 짧든 길든, 되는 싸움이든 아니든 일단 덤벼야 한다. 못배운 사람이나 그렇지, 배운 사람들은 우리가 언어가 짧아도 우리의 똑똑함을 알아본다. 한국에서 나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여기오니, 언어가 부족함에도 배운 사람들 사이에서 똑똑하단 말을 참 많이 듣는다.
누가 알아줘야 내 가치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내게 부당한 대우를 하고 차별을 한다고 해서 내 가치가 낮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 사람들이 내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이기에 이런 일을 당하면 상처를 받는다.
그러니 힘이 들더라도 내 자리는 내가 찾자. 아무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들의 사고 방식대로 '나'라는 사람이 각인되고, 그들이 생각하는대로 나를 대한다. 그들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은 내 몫이다.
I will teach you how to treat me!
너희가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내가 가르쳐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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