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유치원은 어떨까?
직업훈련을 하면서 유치원에서 일한 지도 벌써 1년 반. 독일에서는 유치원에서 일하는 교사를 유치원 선생님이라 칭하지 않고,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이라 한다. 유치원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20명이 넘는데, 그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곤한다. `이 분들이 참 일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구나, 정말 아이들을 위해 일하는구나`.
독일 유치원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크게 두 가지였다. 내 아이가 다니고 있는 유치원을 보니 한국과는 많이 달라서, 엄마인 내가 먼저 내 아이가 이 나라에서 어떤 과정을 거치고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독일에 정착한지 2년이 지나, 일을 해야겠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는 정확히 몰라서, 먼저 직업 상담을 받아보았다. 내 적성과 경험을 살려 하고싶은 일을 찾아보니 유아교육도 한 옵션으로 나와 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직업훈련 (아우스빌둥)으로 유아교육을 지원했고, 독일 시스템상 2-3일은 유치원에서 실무를 익히고 나머지 2일은 전문학교에서 이론을 배우고있다.
먼저 독일에 있는 유치원은 만 1세부터 (가끔 만 6개월도 있다) 6세까지 다니고, 만 0-2세반과 3-6세 반으로 나누어진다. 0-2세만 있는 유치원/기관이 있고 3-6세만 있는 기관도 있으나 대개 유치원에는 작은 아이반 큰 아이반이 다 있다. 내가 일하는 유치원은 0-2세 반이 2반, 3-6세 반이 5반인 총 7반이 있는 유치원이다. 나는 3-6세 반에서 일을 하고 있다.
독일 유치원은 연령별로 반이 나누어져 있지 않다. 0-2세 아이들이 한 반에서 같이 놀고, 3-6세 아이들이 다 같이 한 반에 있다. 0-2세 반은 정원이 10명이며 두 명의 유치원교사가 일하고 3-6세 반은 정원이 20명이며 거기도 2명의 유치원 교사가 일하나, 내 경우처럼 직업훈련으로 배우는 성인들도 자주 있다. 그리고 여기 브레멘은 장애가 있는 아이들도 같이 배우기 때문에, 한 반에 한 두명씩은 장애를 가진 친구들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 반은 20명 정원에 2명이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기에 2명의 특수교사가 있으나, 코로나로 두 명 다 집에서 쉬고 있고, 18명의 아이들 중에 1명은 보조교사가 필요하여 현재18명의 아이들과 2명의 유치원교사, 1명 보조교사 그리고 나까지 4명의 성인이 같이 일한다.
다른 연령대의 아이들이 한 반에서 노는 것은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은 것 같다. 먼저 큰 아이들은 작은 아이들을 도와줄 수 있고, 그러므로 자신감을 키우고 자존감을 배울 수 있다. 어린아이들은 큰 아이들을 보며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특히 형제 자매가 없는 아이일 경우, 큰 아이들 / 어린아이들과 어울리며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유치원에서 경험하니 더 값진 것 같다. 대개는 또래별로, 성별로 어울리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성에 관계없이 같이 놀고, 큰 아이들 작은 아이들이 서로 도와주고 배우는 모습을 일상에서 많이 본다. 큰 아이들은 작은 아이들의 본보기가 되어주려 하는 모습도 보인다.
유치원 일상은 이렇다.
먼저 8시부터 아이들이 등원하기 시작한다. 8시 30분부터 아침을 먹고 싶은 아이들은 집에서 가져 온 도시락을 한 식탁에 앉아서 먹는다. 물론 더 놀고 싶은 아이들은 놀다가 9에 먹거나 늦게는 9시 반에도 먹는다. 어떤 유치원은 한번에 다 같이 앉아서 먹기도 하고, 유치원마다 먹는 시간과 규칙은 다 다르다. 우리 유치원은 아침을 먹고나면 다 같이 반을 정리한다. 놀던 것을 멈추고 갖고 놀았던 장난감을 아이들이 제 자리에 정리한다.
정리가 끝나면 다같이 둥글게 앉아서 아침조회(모건크라이스)를 한다. 3세부터 6세 아이들이 둥글게 의자에 앉아서 유치원 교사의 지시에 따르고, 하고 싶은 말을 할 땐 손을 들고 자기 이름이 불리어질 때까지 기다린다. 물론 5-6세 아이들은 벌써 몇 년을 경험하고 배웠던터라 익숙하나, 3세 아이들은 그런 과정을 큰 아이들을 통해서 배우기 시작한다. 조회에서는 학교에서 아침 조회하듯 오늘은 몇 명이나 왔는지, 누가 안 왔는지 얘기해보고, 요일과 달을 배우고, 한 번씩 부르고, 특별사항 있으면 전달하고, 이벤트가 있으면 그것에 대해 얘기한다.
조회가 끝나고나면, 아이들은 스스로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서 논다. 독일 유치원은 보통 바깥에서 놀 수 있는 정원, 모래장, 놀이터 등이 아주 크다. 이론에서도 아주 강조하는 부분 중에 하나가 아이들은 많이 움직이고 뛰어놀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유아교육 과목에도 체육이 3학기나 있고, 어린아이들,1-6세 아이들도 운동 기구들을 갖춘 곳에서 자주 뛰어논다. 유치원에도 한 주에 하루는 „Turnen“(뜀틀, 기어오르기, 평균대 등 여러 기구를 갖추어놓고 하는 운동) 하는 날이 있다.
아이들이 놀고 반에 들어오면 점심을 먹는다. 점심은 유치원 식당에서 나오지만, 점심값은 부모가 각자 내야 한다. 참고로 독일은 유치원(3-6세)부터 대학까지 교육이 무료다. 경우에 따라 다른 경우도 물론 있지만, 원칙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점심을 먹고나서 한 시간쯤 놀면, 2시 이전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님과 집으로 간다.
아이들이 실내에서 논다는 것은 여러 분야로 나누어진다. 보드게임이나 퍼즐 등 책상에 앉아서 노는 곳, 그림을 그리거나 자르고 풀로 붙이면서 만드는 곳, 듀플로, 레고 등 뭔가를 크고 작게 만드는 곳, 인형놀이 등 역할 놀이 하는 곳, 책 읽는 곳 등이 나누어져 있다. 일을 시작한 지 한 달 두 달째는, 한국 유치원과 많이 다르고 새로운 것들이 많아 어떤 것이 좋고 이런 건 배워야겠다라는 것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것이 내 일상이 되다보니 지금은 크게 떠오르는 것이 없다.
독일 유아교육의 차이점을 찾는다면, 여기서는 아이들의 독립성을 일찍 키워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2-3세가 되면 아이들은 많은 일들을 자신들이 스스로 해보려고 한다. 되던 안되던 일단 하게 둔다는 느낌을 받았고, 3-6세 반으로 오면, 대부분의 3세의 아이들은 오래 걸릴지언정, 어른들 눈에 차지는 않을지언정 혼자 옷도 갈아 입는다. 접시도, 컵도, 수저도 혼자 가져오고, 물도 우유도 혼자 따라 먹는다. 매번 흘리는 아이들 많다. 흘리고 수저 떨어뜨리는 것은 우리에게 일상이고 성장의 과정이므로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식탁에 흘리면 아이들이 스스로 티슈를 가져와서 닦고, 바닥에 수저가 떨어지면 욕실에 가서 헹군다. 우리 유치원은 포셀린 접시와 머그컵을 이용하는데, 아이들이 한번씩 떨어뜨리기도 하고, 떨어지면 깨지기도 한다. 몇몇 아이들은 소리에 놀라고, 본인 잘못이라는 생각에 울상이 되기도 하지만, 본인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똑같이 겪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유치원 교사들의 의연한 대처 과정을 보면서 배운다. 접시가 깨지면 먼저 유치원 교사를 부르고, 실내화를 안신고 있었으면 실내화를 먼저 신고 작은 쓰레받이와 빗자루로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쓸어담아 휴지통에 버린다. 이렇게까지 못하면, 일단 유치원교사를 부른다. 그럼 우리가 물어본다. "쓰레받기랑 빗자루 가져와서 쓸어담을까?". 놀라서 가만히 있거나 긍정적인 대답이 없으면 일단 괜찮다고 달래고 우리가 수습한다. 그럼 다음번엔 그 아이도 한 단계 더 멀리 대처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물이나 우유, 음식은 자신이따른 만큼은 다 먹고 마셔야 하고,, 먹을 만큼만 접시에 담는 것을 가르친다. 먹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먹이지는 않지만, 야채건 고기건 먹어보라고 권하기는 한다. 그래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안먹기는 하지만, 가끔은 우리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이면 한번씩 먹어보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이 많이 참여하며 그들의 의사를 많이 존중해준다는 느낌도 받았다.
일상생활에서 아이들의 의견을 많이 물어보고 반영하며 믿어준다. 예를 들어, 아침을 먹는 것도 정해진 1시간 반 내에서 아이들이 먹겠다고 할 때 먹게 해준다. 한 번씩은 아침을 먹었다고 얘기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럴 땐 믿어준다. 알면서도 믿어준다. 대신 점심 먹을 때까지 배고프다고 해도 음식을 먹을 수가 없다.
유치원에서 만들기를 해도, 아이들이 하고싶지 않다고 하면 다같이 하는 거니까 해보자고 권하기는 하나, 하기 싫다면 굳이 억지로 시키진 않는다. 예비 초등학생일 경우, 학교에 가면 필요한 과정이니까, 예를 들어 자르기는 더 하자라고 했을 때, 그래도 싫다고 하면 그것도 둔다. 그러고 나서 부모님과 상의를 한다.
점심 메뉴도 아이들에게 묻고, 어떤 장난감이 필요한지도 아이들의 의사를 반영하고, 어떤 프로젝트로 반을 꾸밀지도 아이들의 의견을 많이 반영한다. 무엇인가를 만들면 색과 모양, 색연필, 물감, 종이 등을 아이들이 고르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 그래서 무지개색 유령과 박쥐도 있고, 빨간색 하늘과 바다, 갈색 세상 등 아이들의 상상이 담긴 그림과 소품을 많이 볼 수 있다.
브레멘은 1년내내 비가 많이 내리는데, 비가 억수같이 내리지 않는 한 아이들은 비옷을 입고 밖에 나가서 논다. 예를 들어 비가 오는 날에 밖에 나가는데 비옷을 안 입겠다고 하면 입힌다. 그건 건강과 관련 있으니까. 3살 아이가 나무 위로 기어올라가면 내린다 안전과 연결되어 있으니까. 즉, 건강과 안전의 문제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아이들의 의견을 들어준다. 그 외에 것들은 부모님과 상의한다.
유치원 교사는 부모님과 정기적으로 상담을 한다. 물론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며, 그리고 픽업하며 간단히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일 년에 두 번은 부모가 원할 시 아이에 성장발달에 대한 상담을 한다. 유치원 생활은 어떤지, 친구들과의 관계는 어떤지, 문제 해결은 어떻게 하는지 등에 대해 상담을 하고, 5세가 되면 6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므로 예비초등학생 상담을 한다. 이 상담은 성격이 조금 다르다. 내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초등학교 1학년에 상응하는 수학능력은 갖추었는지 등을 상담한다. 유치원 교사의 의사에 상관없이 아이가 그 해 학교에 입학할지안 할지의 최종 결정은 물론 부모가 하나, 그들의 의견이 학부모 결정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힘든 점은 다른 교사들과 한 팀으로 일을 한다는 게 늘 매끄럽지는 않다. 서로 살아온 삶이 다르고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니 힘들 때도 있다. 내가 일을 시작한 2020년은 코로나라는 특수상황으로 지금까지 우리 반에 선생님들만 5번 바뀌었다. 처음 알아가는 단계에서는 늘 작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고, 알아가고 같이 일할 만 하니 다른 사람이 왔다. 이제 3개월째 같은 사람들과 일하는 데 나는 지금이 참 좋지만, 유치원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과 어려움을 겪어 다른 반으로 가거나 다른 유치원으로 옮긴다는 이야기는 심심찮게 듣곤 한다.
이 일을 하면서 좋은 점은, 제일 먼저 우리 해맑고 순수한 아이들을 보면 정말 기분이 좋아지고 보상받는 느낌이다. 한국이든 독일이든 어느 나라의 아이들이건, 어느 나라의 유치원 교사든 다 비슷한 감정이 들 것 같다. 나한테 일은 내 일상이지만, 아이들에게 있어 내가 하는 일은 유년의 큰 부분이겠지. 그렇기에 일이라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긍정적이고 꼭 필요한 교육을 하려 노력한다.
8시부터 시작해서 오후 4시까지라는 정해진 이 규칙적인 시간도 좋다. 이건 매일 8시간인 풀타임인 경우고 일하는 시간도 정할 수 있다.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은 주에 26시간, 32 시간씩 일한다.
아이들과 방학 스케줄이 같은 것도 큰 장점이다. 내 아이가 유치원 안갈 때 나도 쉰다. 비단 유치원 뿐만 아니라, 독일은 3-6세 유치원부터 공교육이라 그런지 학교방학도 유치원 방학과 비슷하다.
아프면 집에서 쉰다. 물론 양심적이어야 한다. 3일까지는 병원을안 가더라도 못 간다고 연락만 해주면 되고, 4일째부터는 의사의 진단서를 제출해야 한다.
무엇보다 내 경우에는, 아이가 만 3세일 때 부터 유치원에서 일하면서 학교에서 이론을 배웠는데, 내 아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고, 아이를 양육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힘들었지만 값진 시간이고, 충분한 보상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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