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있지만 독일에는 없는 문화 1)
처음에는 한국과 독일 문화가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독일은 일단 오래전부터 경제대국이었고, 늘 탄탄하고 강하며 국가 브랜드 가치가 항상 높았다. 독일은 전쟁 전에도 벌써 잘 사는 나라였고, 그렇기에 라인강의 기적과 한강의 기적을 같은 선상에 놓는 것은 여러 면에서 무리가 있다 생각했다.
시간을 두고 보니 비슷한 점이 꽤나 있었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보는 문화
한국만큼 다른 사람 눈치를 많이 보는 나라가 또 있을까? 한국에서 나는 남들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된다,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으면서 자라왔고, 이상적인 사회는 구성원 모두가 이타주의어야 한다고 배웠다. 학교에서 그렇게 배우면 그것만이 정답이었다. 토론이 있는 교육시스템도 아니었고, 다른 의견을 갖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여겨지는 교육 문화였다.
학교도 학교지만, 가정도 사회도 그랬던 것 같다. 남들이 흉본다, 남들이 욕한다는 등 남들의 시선에 내 기준을 어느정도 맞춰야 했던 것 같고, 마치 남들이 나를 인정해야만 내 가치가 인정되는 듯한, 지금은 보이지만 그때는 그것이 너무 당연했기에, 그것이 옳다 그르다 등의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혼자 살 수 없다는 주제로 시작해서, 한국에서는, 그렇기에 나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 하고, 그것이 배려로 불리어지며,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해야만 '좋은 사람'이 된다는 식의 사고로 확장되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이와는 정반대로 독일에서는 내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혼자 살 수 없기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내가 먼저 행복해야 행복한 사회 구성원이 행복한 사회를 만든다고 배운다.
그렇다면, 내 행복이 중요한 독일에서 다른 사람을 눈치보는 문화는 아예 없을까? 있다. 적지만 있다. 이 정도의 눈치는 아주 건강하고 필요한 눈치라 말하고 싶다. 혹은 이것이야말로 눈치 보다 배려란 말이 더 잘 어울릴 법도 하다.
이 사회는, 남들에게 잘보이려 하지 않는다. 개인주의가 철저하고, 그래서 내 기준에 나 자신만 맞추면 되는 거다. 남들은 내가 아니기에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아도 상관없고,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내가 기대하는 말을,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상대에게 바라는 '답정너'는 상상도 못한다.
-예의상
이것도 눈치문화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겠지만, 이건 경험상 정말 없다고 본다. 음식이 맛이 없으면 없지, 맛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에게 일종의 거짓말이라고 보는 것 같기도 하다. 한 예로,
한 번은 여름 보양식으로 야심 차게 삼계탕을 한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 보내준 삼계탕 육수 팩이 있어서 우려내고, 내 입맛에는 그럴듯했고, 다 같이 맛있게 먹었는데, 임신한 아가씨가 말했다.
"나는 당근이 들어간 독일식 닭고기 수프가 더 좋아요"
웃으며 말한 것도, 장난 식으로 말한 것도 아닌, 간단하게 자신의 의견을 얘기했다. 한국 정서로, 혹은 내 정서로 그리 아름답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생각해보면 아가씨는 내가 요리한 삼계탕이 맛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다만 아가씨 입맛에는 당근이 들어간 독일식 닭고기 수프가 더 좋다고 했을 뿐이다.
아가씨는 예의상 수프가 맛있다고 말하지 않았고, 예의상 맛있게 먹지도 않았다.
독일 사람들은 예의상 이쁘다는, 드레스가 잘 어울린다는, 새로 한 머리스타일이 세련되었다는, 몇 년은 어려 보인다는, '립서비스'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맞춰주거나 좋게 하려고 자신이 스스로 공감하지 않는 바를 굳이 이야기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생각해도, 예를 들어, 그날 드레스가 내게 너무 잘 어울려도,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닌 이상 전달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다시 삼계탕 이야기로 돌아가서, 내가 아가씨를 위해 요리를 했고, 삼계탕이 아가씨 입맛에 맞았다면, 맛있다고 얘기해준다. 예의상이 아니라 정말 맛있으니 맛있다고 한 거고, 그녀를 위한 요리이니 맛있다는 평과 더불어 고마움도 함께 전하려는 것 같다.
그럼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독일은 잘해야만 그나마 좋은 소리 듣고 인정받는 거야?
아니다. 잘해도 좋은 소리 못 듣는 경우가 더 많다. 그들은 잘하든 못하든 표현 자체가 적다. 좋은 점은, 그래도 별 신경 안 쓴다. 남들의 평가가 그들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위에서 언급했듯, 그들에게 다른 사람의 인정은 잠깐 기분 좋고 잊어버리는 맥도널드 치즈버거 같은 것이지 어느 맛집에서 먹는, 한 번 먹어봤더니 너무 맛있어서 다음에는 줄을 서서라도 먹으려는 감자탕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가식이 전혀 없어서 좋고, 또 어떻게 보면, 독일이라는 사회에서 한국 사람들은 외로움을 많이 느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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