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살면서 힘든 일
외국에 살면서 힘든 일은 많다. 많지만 살면서 해결되는 부분도 많고, 부담이 줄어드는 일도 많다. 외국에서 살면서 힘든 점과 독일에서 살면서 힘든 점은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하면서 포스팅을 해본다.
먼저 독일에 온지 이제 5년이 넘었다. 30대 후반에 와서 처음 언어를 배웠으니, 당연히 언어 문제가 힘들 수 밖에 없다. 독일에 정착한 지 8개월 차부터 어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으니, 무너질 때마다 잘하고 있는거다, 길게 보자고 얼마나 자신을 다독거렸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언어가 아주 중요한 유아교육 아우스빌둥에서 늘상 하는 토론수업, 그룹 수업, 과제, 프리젠테이션은 나를 너무 지치게 했다.
학교에서든 일하는 유치원에서든 다른 사람이 내게 말을 걸까 봐, 그 말을 못 알아들을까 봐 긴장하고 있을 때가 많았다. 그래도 못알아듣고, 다시 한 번 이야기 해달라고 물어봐야 하는 내 자신이, 너무 못하는 내 자신을 참아내느라 너무 힘들었다.
나는 한국에서 프리젠테이션을 많이 하던 사람이었고, 긴장은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준비한 것을, 발표하는 것을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랬는데, 여기서 프리젠테이션을 하면, A4 5장 정도는 한 톨도 틀리지 않게 달달 외워야 마음이 편했고, 그렇지 않으면 가슴이 너무 두근거려서, 처음으로 내가 스피치 공포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이게 힘들었다. 내가 나로 살지 않는 것 같은 느낌, 내가 나답지 않게 사는 것 같은 기분..
그런데 여기서 잠깐 드는 생각은 호주에서 유학할 때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호주에서는 독일에서 보다 더 오래 살았는데, 그리고 독일에서는 아우스빌둥이고, 호주에서는 정규 대학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했는데, 거기선 한번도 외워간 적이 없다. 물론 영어가 독어보다 더 편한 것도 있지만, 호주에서는 잘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훨씬 적었다. 그들은 내가 잘하는 것을 그들과 연관 짓지 않았다.
독일은 그렇다. 독일 사람들도 한국 사람들처럼 뭐든 잘하고 싶어한다. 다른 사람의 성적을 궁금해하고 나와 비교하기도 하고, 다른 그룹의 프리젠테이션이 인상 깊으면 다음 그룹이 더 긴장하기도 한다. 말로는 좋은 성적 필요없고 과목 패스만 하면 된다고 하지만 시험이나 평가가 있을 때, 그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하며 잘하려고 많이 노력한다.
평가받는 느낌, 잘해야 할 것 같은 기분, 중압감.. 이것이 힘들 때가 많다.
5년차인 내가 아직 적응하지 못하는 말 끊는 문화. 이 사람들은 말을 하고 있으면 중간에 툭툭 끼어드는 것이 그리 대수롭지 않다. 한번씩 "내가 끝까지 얘기할 때까지 기다려줄래?"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들도 중간에 말을 자르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진 않지만, 대화의 한 부분인양 아주 자연스럽게 넘긴다.
어떨 때에는 말이 잘리면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기도 하고, 어떨 때에는 상대가 내 말을 자르고 얘기를 해도, 멈추지 않고 끝까지 얘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 상대가 멈추거나 아님 내가 멈추거나 해야 하는데, 한 번씩 둘 다 안 멈추어 정말 언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일단 기분이 나쁘다. 나는 니들처럼 독일어 원어민이 아닌데, 내가 하는 말을 잘라버리면, 그리고 그들 말을 듣고 있으면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나서 말하는 우리 문화와 정반대인, 호주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이 문화는 아직도 완전 적응하지 못했지만 많이 좋아지긴 했다.
화가 나니까. 불공평 하니까. 짜증나니까.
상대방이 말을 할 땐, 일단 들어주고 기다린다. 그리고 내가 말할 때 상대방이 끼어들면, 상대가 멈춰야 하는 게 예의이다. 독일 3년차까지는 상대가 말을 하면, 그게 내 말을 자르던지 말던지 나는 자동으로 말을 멈추었었다. 지금은 내가 말을 할 때 상대가 끼어들면, 그 사람이 멈출 때까지 나도 말을 한다.
그래도, 여전히 말을 끝까지 안듣고 중간에 끼어드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지 않다. 아니, 많이 불편하다.
음식도 엄청 그립지만, 가족도 친구도 한번씩 미치도록 그립지만, 그보다도 독일에 살면서 가장 힘든점은 내가 이 사회의 일원이 아닌 것 같은, 환영 받지 못하고, 겉으로 나도는 것 같은, 나는 그들과 다른 것 같은 기분이다. 이것은 정말 기분이고 주관적 감정이지만, 이런 감정도 이유없이 막 생기는 건 아닌 것 같다.
유럽에서 온 다른 나라 애들은 동유럽이건 서유럽이건 그런 이질감이 정말 적은 것 같고, 아랍계나 피난민들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만, 온 가족/친지/지인들이 같이 오기도 했고 워낙 인구비율도 높아서 잘 적응하는 것 처럼 보인다.
다시 한 번 호주에 비교하자면, 호주에서는 외로움을 크게 느끼지 않았다. 한인 슈퍼가 많이 있었고,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없었다.
인종차별을 한번씩 겪는 것도 내가 이런 종류의 외로움을 느끼는 데 한 몫을 하겠다. 아시아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독일 사람들이 친절한 사람들이 아니라서 그런지, 그들이 표현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으나, 나는 여기서 그들과는 다른 사람 같다.
외국인인 친구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미국 국적을 뺀 나머지 친구들은 격하게 공감한다. 미국인인 지인은, 자신이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많은 혜택을 봤다며, 너네 고충울 잘 안단다. 결국 주관적인 감정이 아닐 수도 있단 얘기이다.
겉으로 보면 나는 참 잘 산다. 말도 문법에는 안 맞지만 망설임없이 척척 하는 것 같고, 잘 못 알아들을 때도 있지만 바로 묻고 해결하고, 직장에서 인정받고, 취미 생활도 하고 있으니 배가 불러서 하는 말 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어쩌면 정말 잘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 내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찾을 시간이. 이것이 성장을 거듭하는 과정이기도 하니, 위축될 것도 없다.
잘하고 있어. 충분히.
내가 옳은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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