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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독일 인종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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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인종차별

 

 

인종차별? 나와는 별개의 문제로 생각해왔다.

 

 

 

학교 교과서에서만 배웠던 인종차별이었고, 많이들 겪는다는 호주에서의 아시아계 인종차별도 나는 겪은 적이 없었다. 인종차별이 그리 신경을 쓰지도 않았고 쓰이지도 않았다. 미국 인디언 대학살이나, 독일의 홀로코스트나 인종차별이지, 내가 불법 이민자도 아니고 독일에서의 아시아계 이미지는 아직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누가 내게 직접적인 인종차별을 할 거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코로나가 발생한 후, 베를린 같은 대도시에서는 아시아계 인종차별이 번번히 일어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런 기사를 볼 때에도, 대도시는 다르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리고 얼마 전 토트넘 손흥민 선수가 첼시전에서 뛸 때, 첼시 팬이 손으로 두 눈을 찢어 작게 보이게 하는, 대표적인 인종차별 행위를 해서 논란이 되는 것을 보고도 영국 이야기일 뿐, 독일은 저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독일에서의 아시아계 사람들에 대한 인종차별의 대표적 단어 "칭창총"

 

 

실은 나도 독일에 온 후로 거리에서 칭창총을 들은 적이 종종 있었는데, 나라는 사람은 한번씩 영혼이 참 자유로워 그들에게 오히려 가르쳐줬다.

 

 

칭창총 하지 말고, 앞으로는 안녕하세요 하라고. 안녕하세요가 길면 그냥 짧게 안녕하면 된다고.

 

 

안녕이라는 발음이 외국인에게는 쉽지 않다. 그걸 아는 나는 친절히 영어의 어니언(양파) 알지 않냐고. 어니언해보라고. 어니언/안녕 대충 비슷하게 들리면 우리의 대화는 끝이 난다. 그들도 웃고 나도 웃고 나름대로 즐겁고 가벼운 인종차별 경험을 해왔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나서 일어난 일이었다. 독일 기차는 유모차나 자전거를 세울 수 있도록 칸마다 약 6석이 접이식 의자로 되어있는데 양쪽 모두 접이식이라 유모차나 자전거가 없으면 공간의 여유가 있는 편이다. 

 

 

나는 그 접이식 의자 한쪽 끝에 타고 공부를 하고 있었고, 한 무리(40대로 보이는 남자 1명, 같은 연배로 보이는 여자 2명)가 접이식 의자에 앉았다. 그들은 아주, 다른 사람들에게 무례할 정도로 아주 크게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었다.

 

 

기차는 흔들림이 적어 버스에서 보다 집중을 더 잘할 수 있어 이 시간을 자주 활용하는 편이라, 나는 이에 신경을 안 쓰고 내 할 일을 했다. 

 

 

그런데 어쩐지 이 시끄러운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얘기하고 웃는 것 같다. 영어도, 독어도 아닌 다른 언어인데, 느낌이라는 게 그랬다. 고개를 한 번 들었다. 그 사람들이 내게 손가락질을 하는 것 같다. 그들을 똑바로 한 번 쳐다봤다.  그들은 나를 보고 막 웃더니, "칭창총". 어찌나 기분이 나쁘던지.

 

 

 

"난 칭창총이 아니다. 나는 기분이 많이 나쁘고 당신들이 무례하다는 생각이 드니 지금 당장 멈추어라"라고 또박또박하게, 의도적으로 천천히,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독일어도 어느 정도 하는 사람들인데 자기들끼리는 자국 언어로 대화하고 나한테 직접적으로 말할 땐 독일어를 했다.

 

 

내 말이 끝나니 이번에도 미친 듯이 웃더니 아주 가볍게 미안하단다. 그러더니 내 옷이 이쁘니, 목걸이가 이쁘니,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한다. 그럼 태국에서 왔냐고 묻는다.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므로, 어디서든 당당하게 말한다, 한국인이라고. 내 말이 끝날 때마다 천박스럽게 웃어댄다.

 

 

 

그리고 내가 물어본다. 

 

 

"당신들은 어디서 왔는지 궁금하군요."  했더니, 못 알아들은 척 그들의 모국어를 한다. 

 

 

 

웃긴 건, 그 상황이 기차에 사람이 많았는데, 그리고 누가 봐도 인종차별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몇 년의 경험상 독일 사람들이 남의 일에 나서지 않는 것은 놀라울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내가 그들에게 그들의 국적을 물었을 때, 그렇지 않아도 우리 상황을 보느라 조용했던 기차 안이 더 조용해졌다. 어쩌면 기차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내 큰 사건이 퇴근길에 생각지 않게 생긴 재미나는 구경거리였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도 나서지 않았지만, 누구나 알고 싶어 했다.

 

 

내가 다시 한번 말했다. 

 

 

"당신들이야말로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하다고요, 그리고 왜 국적을 말 못 하는지도 궁금하네요"

 

 

여전히 그들은 못 알아들은 척 모국어로 얘기하고 웃고 난리다. 그래서 내가 한마디 더 했다.

 

 

"아, 알겠어요. 당신들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말을 못 하는 것 보니, 당신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네요. 대답 못하는 것, 그 자체에 의미가 있고, 그게 또 하나의 대답하기도 하네요."

 

 

그들은 어느 정도 술에 취해 있기도 했고, 일반적인,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들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이 이번에는 휴대폰으로 자신들을 촬영한다. 그러더니 나도 찍는다.

 

 

멈추라고 했으나 그들은 나를 계속해서 촬영했기에 나도 그들을 촬영했다.

 

 

 그 이야기를 학교에서도 하고 일터에서도 이야기했다. 모두가 이야기하기를,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며, 할 수 없는 일이 없는 것이 제일 문제인 것 같단다.

 

 

 

독일 사회에서 점점 커지는 문제지만 덮어두면 아무 일 없어 보이기에 마냥 묻어만 두는 것 같다. 마치 뾰족한 가시 때문에 가만히 두고 싶은 밤송이를 굳이 건드려 손에 찔려가며, 아파가며 껍질을 깔 이유를 못 찾는 것 같다. 겉은 좋아 보이지만 막상 까 보면 벌레 먹은 밤들도 있고, 썩은 밤들도 있는데 말이다.

 

 

 

슬픈 점은 인종차별을 당하는 사람들은 이민자들이나, 난민 혹은 그들의 후손들이기에, 그리고 그들은 그리 '힘'이 없기에 인종차별이 독일에서도 점점 일반화되는 것 같다.

 

 

 

그 일 후, 그렇게 시험이니 뭐니 바쁜 일이 많이 있었고 두 달쯤 지났을 때, 나는 그 비디오와 사진을 지우기로 결심했다. 자꾸 보면서 기억하지 말자고. 그게 일주일 전 일이었다.

 

 

 

그리고 엊그제, 이런 직접적인 인종차별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은근히 차별을 당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수시로 받았다. 일반 차별로 볼 수도 있지만 인종차별로 볼 수도 있는 일들이었기에, 이제부터는 더 민감하게 대응하기로 했다. 그래서 먼저 경찰서로 가서 내 인종차별 경험을 이야기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는지, 내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 그들은 처벌을 받는지 등을 물어봤다. 경찰에 따르면,

 

 

독일에서 인종차별을 당했을 때,

 

 

- 당장 경찰에게 신고하라. 전화하라.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말하라. 그들은 너를 도와줄 것이다.

 

(내 경우는 기차 안이었으므로, 예를 들어 철도 승무원이 있으면 그들에게 신고해도 된다)

 

 

- 비디오를 찍어 증거를 확보하라.

 

(일반적으로 비디오나 사진을 찍을 사람의 허락 없이 촬영을 하는 것은 독일에서도 초상권 침해이다. 하지만 내 신변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을 두고 하는 것은 괜찮다)

 

 

3개월 이내에 신고해야 한다.

 

 

신고를 해서 만약 가해자들이 경찰에 잡힌다면, 그들은 독일 기본권에 저촉되므로 처벌을 받는다고 한다.

 

 

내 경우에는 사진과 비디오를 이미 지워버렸기에, 일이 조금 복잡해졌다.

 

 

 

큰 소리로 비웃는 것은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아무리 그들이, 내가 말을 할 때마다 크게 비웃었더라도, 비웃음이라 느끼는 것은 내가 느끼는 주관적인 감정일 수 있고, 그들이 나를 비웃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게 애매하단다. 그러면서 내게 이해는 하지만 현실이라고 덧붙인다.  하지만 '칭창총'이라 말하는 것은 명백한 인종차별 행위라고 했다.

 

 

 

해가 거듭될수록 느껴지는 직, 간접적인 인종차별. 이에 맞서 나는 싸우기로 했다. 비록 그것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지라도 내 권리를 내가 찾지 않으면, 크고 작은 인종차별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앞으로 나를 포함한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봤다. 언어를 더 갈고닦아야 한다. 말을 유창하게 할 수 있으면 직, 간접, 혹은 암묵적 인종차별까지 어느 정도 거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나라 언어가 부족하다고 해서 입을 꼭 다물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니,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사는 도시, 브레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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