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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보행자 교통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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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자 교통사고

 

 

 

오늘이 교통사고를 당한 지 딱 1년 되는 날이다.

그날은 남편에게서 좋은 소식이 있어서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샴페인 한 병과 초콜릿을 사 온 참이었다. 평범한 금요일이었고, 11월 말이라 오후 4시가 조금 넘었는데도 북독일의 하늘은 벌써 어두워져 있었다. 비까지 내리고 있어서 길도 축축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조금 걸어 사거리 신호등에서 파란불이 켜지길 기다렸다. 사실 내가 운전할 때 가장 신경 쓰는 순간 중 하나가 바로 좌회전 신호를 받을 때다. 독일에서는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려면 맞은편에서 직진하는 차를 먼저 보내야 하고, 직진 차가 없는 경우에도 그냥 좌회전하면 안 된다.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가 없는지까지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

 

 

 

그날 나는 보행자로서 파란불에 신호등을 건넜다. 길의 절반을 지났을 때, 갑자기 SUV 차량이 나를 치면서 몇 미터 날아갔다. 차에 부딪힌 첫 순간의 느낌은  "차가 따뜻하다" 생각이 드는데 난다 내가 붕~. 땅에 떨어지면서 왼쪽으로 착지했고, 그제야 내가 사고를 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몸을 조금씩 움직여보니 다행히 몸이 내 생각대로 움직이고 고통이 크게 없었다. 아, 정말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드는 찰나, "사람을 쳤으면 내려와야 하는 거 아닌가? 혹시 뺑소니인가?"라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가해 차량 쪽으로 걸어갔다. 꽤 걸은 걸 보니 내가 정말 멀리 날아갔던 것 같았다.

 

 

 

차 안을 보니 어두워서 그런지 차주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창문을 두드리며 나와보라고 외쳤다. 이때 가해 차량 바로 뒤를 따라오던 차의 운전자가 내려 나에게로 왔다. 그녀는 내게 다친 곳은 없는지 물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사고를 다 목격했다고, 경찰에게 증언하겠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아마 내 무의식 속에는 독일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혼자 싸워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도움을 주겠다는 그녀의 말이  안심이 됐던 것 같다.

 

 

 

잠시 후 나이가 조금 있어보이는 가해 차량의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왔지만, 쳐다만 볼 뿐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후 나는 목격자의 부축을 받아 길가로 갔는데, 그 곳에 도착하자마자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고 온몸을 떨고 있었다. 목격자가 경찰과 구급차를 불러야 하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녀가 전화를 거는 동안 가해 차량 운전자가 한 번 와서 어떠냐고 물었는데 화가 나 있던 나는 그녀에게 Scheiße라고 소리 질렀더니 그녀는 바로 돌아갔다.

 

 

 

잠시 후 목격자가 자신의 차로 가서 기다리자며 나를 부축해 주었고, 차 안에서 조금 진정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가 먼저 도착했고, 이어서 남편과 경찰도 도착했다. 경찰의 질문에 내가 겪은 일을 묻는 대로 답했고, 일단 큰 부상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근처 병원으로 이송하겠다는 안내를 받았다.

 

 

 

병원에서는 간단한 육안 검사만 진행했다. 다행히 몸에는 멍이 든 것 말고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월요일에 주치의를 찾아가 다시 진료를 받아보라는 말을 듣고 병원을 나섰다. 나중에 남편이 말하길, 가해 운전자가 자신에게 여러 번 사과했다고 했다. 차에서 내리지 않은 건 사고 당시 경황이 없어서였다고 했다는데, 그래도 사고 후 한 참이 지날 때까지 내게 오지 않았던 것이 참 씁쓸했다.

 

 

 

운전자는

 

 



Strafgesetzbuch (StGB) § 229 Fahrlässige Körperverletzung Wer durch Fahrlässigkeit die Körperverletzung einer anderen Person verursacht, wird mit Freiheitsstrafe bis zu drei Jahren oder mit Geldstrafe bestraft.



독일 형법(StGB) 제229조 과실치상
과실로 인해 타인에게 신체적 손상을 입힌 자는 최대 3년의 징역형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



https://www.gesetze-im-internet.de/stgb/__229.html



 

 

 

이렇게 해서 한국에서는 한 번도 타본 적 없는 구급차를 독일에서만 두 번째 타게 되었고, 갑작스러운 사고로 급히 큰 병원을 방문한 것도 독일에서만 이번이 세 번째 경험이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가끔은 '나라는 사람은 독일과 정말 안 맞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사고는 Arbeitsunfall에 해당되어 회사에서 세 번의 긴 서류를 작성해야 했고, 집으로도 이와 관련된 서류가 도착하여 다시 한 번 작성했어야 했다. 한 번 사고 났는데, 일이 이렇게 많다. 이 일로 나는 지난 8개월 동안 운전대를 잡지 못했다. 차들이 나에게 운전해 올 것 같았고, 사고가 날 것 같아서 운전을 못했다.

 

 

 

사고난지 9개월이 지난 후, 약 한 달동안 남편이 옆에서, 안전하니 너는 하던대로 운전만 하면 된다, 아무도 너한테 돌진해오지 않는다는 말을 끊임없이 해 준 다음에야,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다시 조금씩 운전하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 트라우마는 있고, 집 근처에서만 운전하지, 새로운 곳에 가면 다시 패닉이 오기도 한다.

 

 

 

지난 1년의 시간동안, 이 경험을 조금씩 정리하면서 몸과 마음이 모두 단단해 지는 과정이 있었을 거라 믿는다. 이렇게 지난 순간들을 다시 떠올리며 정리하는 자체가 내 치유와 성장의 한 과정이라 믿고, 이번에도 잘 이겨낸 자신을 격려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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