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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교육

3년 다닌 유치원을 떠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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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다닌 유치원을 떠나는 이유

 

 

 

처음에는 2년 아우스빌둥을 하는 동안만 다닐 생각이었고, 3년째인 실습을 하는 해에는 다른 유치원으로 옮길 생각이었다. 원장한테도 처음부터 내 계획을 얘기했었고, 원장도 다른 유치원에서 우리 유치원과는 다른 점을 배우는 것도 좋은 생각이라며 그러자고 했다.

 

 

 

일을 시작한지 1년 반이 지나고 새 유치원을 찾는데, 생각보다 자리가 없다. 독일은 어디든 유치원 교사가 없어서 난리라는데, 1년간 실습을 해야 한다는 말은 일주일 중에 하루를 빠져야 한다는 말이기에 원장들이 그리 반가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른 곳에 이력서를 넣고 전화를 넣고 하던 중, 어느 날은 원장이 나를 찾는다. 본사에서 전화왔는데, 내가 근처에 다른 유치원에 지원했다고, 1년 더 데리고 있을 생각이 없냐고 물었단다. 원장은 내가 오케이만 외친다면 당장 고용한다고, 그렇지 않아도 항상 같이 일하고 싶었던 사람인데 간다고 해서 붙잡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3년째에도 같은 유치원에서, 하지만 다른 반에서 일했다.

 

 

 

2년간 일했던 반에서 송별파티를 작게 하고 나니, 다음 날 학부모들이 꽃과 초코렛을 들고 찾아왔다. 너무 서운하다고, 아이들이 많이 따랐다고.

 

 

 

아, 내가 헛으로 일하진 않았구나 싶었다.

 

 

 

일을 한지 2년 반이 지나고, 마음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 곳에 남아있을지, 아니면 다른 유치원으로 갈지에 대해서. 있어야 하는 이유와 떠나야 하는 이유가 너무 분명했기에 내리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이 곳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 지금까지 나라는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리기 위해 많이 싸워왔다. 언어가 서툴러도 무시받지 않기 위해, 실습생도 생각이 있고, 자기 주장을 펼 수 있으며,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많이 노력했고, 지금은 그 이미지가 이 유치원에는 있다. 다른 유치원에 가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곳을 떠나야 하는 이유: 첫 3년간 나는 실습생이었다. 실습이 끝나고 유치원 정교사가 되어도 이 곳에 머무르는 한 실습생의 이미지를 크게 못 벗어난다.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예를 들어 인종차별을 겪으며 원장에서 도움을 청했을 때, 원장은 말만 번지르하게 했지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았다. 원장 말은 내가 무슨 일이든 혼자서 잘 해결 할 것 같다고 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원장 생각이고, 도움을 청했으면 들어줄 법도 한데, 그러지 않은 걸 보면, 앞으로도 내 일에 크게 도움을 줄 것 같지 않다.

 

 

 

Make it simple!

어려울수록 단순하게 생각하라고 했다. 머물러야 하는 이유가 더 크면 머무르는 거고, 떠나야 하는 이유가 더 크면 떠나면 된다.

 

 

 

그렇게 갈등하던 어느 날, 나는 이 곳에 머무르기로 한다. 떠나는 건 언제든지 떠날 수 있으니, 여기서 만난 몇 몇 좋은 사람들을 보며 1년이든 10년이든 일단 있어보기로 한다. 그 결정에 원장은 너무나 기뻐했고, 내가 배정받을 반을 벌써 생각해보겠다고 하더니, 다음 날 바로 결정했다. 그 반에서 그 선생님이랑 잘 일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런데, 계약이 끝나기 두 달 전 사건이 생겼다. 내가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과 대우가 달랐던, 지금까지 많이 겪었던 일이건만, 그 때는 정말 크게 다가왔다. 여러번의 시도에도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3년간의 쌓였던 분노와 서러움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나는 이 유치원을 떠나기로 한다.

 

 

 

이 사건은 내가 이 곳을 떠나야 이유 중에 하나인, 이 곳에서 일하는 한 나는 동료들에게 실습생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고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을 것 같은 생각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없을 꺼란 보장이 없었다.

 

 

 

몇 달 전에 이 유치원에 머무르기로 결정했을 때에는 뭔가 확신이 없었다. 49프르와 50프로의 차이로 머무르는 것.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확신이 찼다. 이 결정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고, 새 유치원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도 여기보다는 나을 꺼란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옳았다. 

 

 

 

원장에게 그만둔다고 얘기하고, 본사에 연락하고, 근처에 있는 새 유치원에 연락해서 새 교사가 필요한지, 한 번 둘러봐도 되는지, 된다면 언제가 좋은지를 정한다. 하루를 그 유치원에서 지내본 후 , 거기서 일할지 다른 유치원을 다시 한 번 볼지를 결정하고, 만약 내가 그 유치원이 마음에 들면, 그 유치원 원장도 내가 마음에 들어야 하니 사실 새 유치원이 정해지는데는 시간이 좀 걸린다. 그럼에도 이 모든 일이 일주일만에 진행되고 결정되었다.

 

 

 

그 후로 한 달 정도 더 옛 유치원에서 일하고, 학부모들과 송별회를, 아이들과 다시 한 번 송별회를 그리고 동료들과 다시 한 번 송별회를 했다.

 

 

 

우리 반 엄마들끼리 연락해서 선물과 초코렛과 꽃다발을 준비하고, 지금까지 너무 고마웠다고 말하는데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아이들과의 송별회에서 우리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내게 줄 선물이라며 그림을 그려서 주는데 마음이 짠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지금껏 그렇게 작별 인사를 했음에도, 굳이 다시 따로 와서 인사를 했던 몇 몇 엄마들을 정말 잊을 수 없다.

 

 

 

동물원 반에서 일했던 나를 위해 한 엄마가 만들어준 동물원 편지와 서점 바우처

 

 

동료들에게 받은 꽃과 편지, 서점 바우처

 

 

엄마들에게 받은 감동 만점 초코렛

 

 

이 초코렛을 선물받고 한 참 후에나 열어봤다. 감사하단 말과 함께, 초코렛 각각 무엇에 대해 감사한지, 아이들을 기다려줘서 감사,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줘서 감사, 아이들의 '왜?'에 대한 질문에 답해줘서 감사, 같이 동요를 불러줘서 감사, 아픈 곳에 밴드를 붙어줘서 감사 등, 엄마들이 직접 만들었다.

 

 

 

이런 초코렛은 아까워서 못먹는다 정말.

 

 

 

그 외 몇 몇 엄마들의 꽃다발과 엽서, 작은 선물들.. 잊지 않고 하나하나 가슴에 다 안고 다른 유치원으로 왔다.

 

 

 

지금은 새 유치원에서, 내가 맡은 새 반에서 다른 동료 하나와 함께 하루하루를 버텨간다. :) 버티지 않고 잘 지낼 때도 있지만, 유치원에서 일하는 거, 정말 안 쉽다. :)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대로 반을 꾸밀 수 있고, 내 계획대로 아이들을 위해 뭔가를 준비할 수 있으며, 동료들과 수직 관계가 아니라 평행 관계로 얘기나 토론을 하니, 책임감이 무거워진 만큼 동기부여도 자연스레 되는 것 같다.

 

 

 

돌아보면 내가 독일에서 살 줄, 유치원에서 일할 줄 상상도 못했다. 이렇게 인생이 한 번에 확 바뀔 수도 있구나.

 

 

 

앞으로는 생각하는대로 살자, 사는대로 생각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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